[9월 22일] 하나님의 방법(역대상 13장 1-8절)
다윗은
'기럇여아림'(아비나답의 집)에(5절,6절))
방치 ? 되어 있던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성으로
가져오기를 원했다.
다윗은 그 계획을
지도자들과 의논했고(1절)
모든 백성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했다(2절,4절).
'하나님의 궤'를
가져온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의미이다(3절).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는
블레셋으로부터 다시 찾은 하나님의 궤(법궤)를
신경쓰지 않았다(3절).
다윗은
모든 백성들을 모으고
법궤를 가져온다(5-6절).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출발한다(7절).
하나님은
민수기에서 궤를 옮길 때에는
레위인 (고핫자손)이
어깨에 메고서
옮기도록
명령하셨다.
다윗이
그 말씀을
잊은 것일까?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고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
더 정성스럽고
더 좋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다윗과 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법궤를 옮기기 시작했지만 (8절)..
결국 이 일은
큰 아픔으로 이어진다(내일 본문).
다윗의 마음은
분명 선했고
백성들과 함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부흥을?
꿈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은
다윗의 방법과는 달랐다.
하나님께서
너무 고집스럽고
까다로우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레위인(인간)이
직접 메라고 하신 뜻은
다 알 수 없다.
단지..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백성들의 안전함과 평안을
함께 지키시려는 목적과
사람들을 겸손하게 하며 훈련시키려는
어떤 생각이
분명 있으셨을 것이다.
아무리
나의 좋은 뜻이 있고
열심을 가지고서
새로운 수레를 (다윗이 생각하는 좋은 방법)
만들어 옮기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방법과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과
크게 다를 수 있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부흥과 변화'라고 하는
선한 목적이 있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어떤 좋은 결과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이
나의 생각과는 다를 때가 너무 많다는 것을
갈 수록 더 배운다.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고
때로는 더 낮아지게 하시며
때로는 광야에 머물게 하신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고 할 때..
나 스스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려고 하거나..
주어진 결과에 대하여
자만하거나
반대로 절망하게 된다.
내 방법과 시간과 내 계획을 내려놓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고 오늘도 이 부분에서 나는 훈련받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충성과 기도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조금은
불편해보이는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을
받아들이고 기다리며
자만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충성되게 걸어가는 모습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하신 아버지이시며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의 삶과 섬김을
붙잡고 계시며 일하시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어떤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이든
신뢰하면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꿈꾸는
멋진 모습(새수레)은
아닐 수 있고..
나와 사람들의 기쁨과 기대에
찬 물?을 붓는 것 같은
하나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가장 선하신 때에
가장 선하신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과 부흥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 하루도
충성된 믿음과 기도와
섬김의 길을
한 걸음 걸어가길 원한다.
주님께서
오늘도 나의 생각과
나의 방법을
주님의 방법으로
바꾸어 주시고 나의 하루를 주님의 뜻대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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