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아끼시는 하나님(요나 4장 1-11절)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긍휼하게 여기시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싫어하며
분노한다(1절)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빈정거리듯 이야기하면서(2절),
자신은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말한다.(3절)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매우 편협하고
자기만을 아는
요나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너가 이렇게 화내는 것이 옳은가' 라고
질문하신다(4절).
그러면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던 요나에게
박넝쿨을 준비하신 것이다(5절)
그 박넝쿨은
요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요나는
그것 때문에 위로를 얻고 기뻐한다(6절).
크게 화냈다가
박넝쿨 하나로 기뻐하는
참 가볍고 갈대같은
요나의 모습과 감정이다.
이러한 요나가
귀엽기도 하고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새벽에 벌레를 준비하셔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고(7절),
아침이 될 때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서
요나는 힘들게 되었다.(8절)
이 상황에서
요나는
다시 힘들어하고
화를 내고
죽기를 원한다(8절)
그렇게 다시 화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또 질문하신다.
'너가 성내는 것이 옳은가?'(9절)
그럼에도
요나는
회개하거나
깨닫지 못한다.
그러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중요한 것을 말씀하신다.
"너가 수고하지 않은
그 박넝쿨도
'아끼거든'(10절),
십 이만명의 사람들과
수 많은 가축이 있는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11절)
여기에
'아낀다'는 말은
긍휼이 여긴다..
아파한다..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지만
니느웨사람들을 아끼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품으셨고
소중하게 여기셨다.
반면
요나는
'자신의 것'만
아꼈다.
자신의 박넝쿨..
자신의 민족..
자신의 안전함만을
소중하게 여겼고
그것이 잘못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내 것만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
쉽게 분노한다.
내 가정..
내 교회..
내 시간과 물질..
내 자존심..
그것을 얻으면
기뻐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불평하고 원망한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니느웨 만을 아낀 것이 아니라
요나도 아끼셨다는 것이다.
불순종하는 요나에게
기회를 주셨고
또 주셨고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요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니느웨만이 아니라
요나의 모든 것을 아끼셨다.
요나의 사명과
삶과 신앙을
소중하게 여기셨다.
'아끼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님의 눈물과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아니 하나님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것만을
아끼면서..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아끼시는 문제 있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그 곳에
어떻게 감사와
사랑과 자유가 있을까?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아끼신다.
나의 시간과
나의 사명과
나의 기도와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잃어버리고
약하고 문제있는 사람들도
아끼시면서..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함께 아껴주기를 원하신다.
아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을 아끼는
삶이 되기를
요청하신다.
나를 아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아끼고 있을까?!!
여전히 편협하고
내 중심적인 나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며..
주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나 역시..
내 자신과 형제 자매들과
교회들과 세상을
아끼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정말로 아끼시고 나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과 섬김이
주님처럼 그렇게 아낄 수 있는
마음과 삶으로
조금씩
더 변화되게 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도 순종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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