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성숙으로 가는 길(고린도전서 14장 13-25절)
사도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말한다(13절).
그 이유는
방언을 하는 것이 귀하지만 (18절)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어서..
공동체 안에서는
'덕'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15-17절).
그러므로 '일 만 마디의 방언'보다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더 귀하다(19절).
방언을 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언보다 더 성숙하고 귀한 것은
공동체 안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 문맥에서..
‘깨달은 마음’이란
다른 사람을 섬기고 가르치기 위한
'지혜와 분별력'을 의미한다.
즉 깨달은 마음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다.
바울은
지혜에 있어서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20절).
'장성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성숙하다'는 뜻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마음껏 하는 것은
성숙도 아니고
깨달은 마음도 아니다.
성숙은
내가 올바르기에
나는 문제 없다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지혜와
깨달은 마음은
내가 가진 생각이
바르다고 말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아니다.
힘들면 쉬고
어려우면 피하는 것이
성숙이 아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어떤 면에서
'스스로 바른 것'이 될 수는 있겠지만..
주님이 정말 요청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깨달은 마음’이며
‘성숙한 지혜’이다.
내 생각을
양보하지 않는 삶!!
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쉽게 판단하는 모습!!
내 마음이 편안한대로
살아가는 것!!
그러한 것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미성숙한
아이들도
가능한 모습이다.
나는 오늘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성숙'으로 걸어가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편안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교회와 믿음 안에
아니 내 모습 속에
내가 바르다는 이유때문에
혹은 내가 가진 것과 내 은사를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들이 많다는 것을 보게 된다.
깨달은 마음과
성숙한 지혜보다는
내 주장과
내 생각과
내 편안함을
더 강조하는 모습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아프게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든..
가정이든..
공동체이든..
내가 생각하는
바른 길을 넘어서
성숙한 길로
걸어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주님께서
그 성숙으로 가는 길가운데
동행하시며
오늘도
‘깨달은 마음’과
‘성숙한 지혜’를 주실 것을
나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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