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너무 다른 주님의 나라(마태복음 19장 23-30절)
- 오천호 목사

- Ma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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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다(23-24절).
이 말씀에
제자들이 놀란 것은(25절)
'부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25절).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다(26절).
이 말씀은
부자의 오만함과
스스로의 만족함에 대한
잘못을 이야기하시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겉으로 드러난
축복의 증거들이
결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난함'도 마찬가지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어떤 것으로도
천국에 자격이 없고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장 주어진
어떤 결과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이해하려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내 생각과 너무 다른..
하나님의 나라이며
내 생각과 너무 다른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이나
내 생각과 너무 다른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그 보상이나 영광 역시
마찬가지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은 부자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린자..
즉 주님 때문에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에게 어떤 하늘의 보상이 있을지에
대하여 질문한다(27절).
예수님은
그들의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그것이 어떤
작은 버림과 수고라도
여러 배를 받고(29절)..
하늘의 영광이
있을 것을 약속하신다(28절).
그런데 주님은
‘ 그러나’ 라고 하시면서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될자가
'많을 것' 이라고 말씀하신다(30절)
그런 경우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가 ‘많다’라고 하신다.
먼저 된 자는 누구이고
나중 된 자는 누구일까?
먼저 되는 자는
눈에 보이는 부자들이나
당시 지도자들이나 종교인들일 수 있다.
그들에 비해 가난한 자
즉 제자들 같은 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나중된 자이지만
하늘에서 영광이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 역시
스스로 많은 것을
버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먼저된 자 일 수 있다.
많은 희생을 하고
모든 것을 버린 것을
주님은 귀하게는 여기시지만
그것으로 자만한다면
그 헌신은 하늘에서
나중된 자의 모습이 되며..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단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수고하고 섬겼던
작은 자들
즉 나중된 자들이
주님 앞에서
(하늘에서는) 먼저 된 자 즉 높아지는 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 역시
세상과 너무 다른
하나님의 나라이다.
당장 대단해 보이는 헌신과
나의 수고를 자랑하기보다..
주님 앞에
정말 작은 자로서
섬기고 희생할 때
스스로 작은 자가
주님의 나라에
가장 높은 자가 된다.
나는
먼저 된 자일까 나중 된 자일까?
처음에는
나중된 자처럼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지만..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인가 된 것처럼
먼저된 자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가진 어떤 외적인 결과를 가지고
스스로 부자처럼 살지 않고..
내가 수고하고 헌신하는 그 어떤 것으로
스스로 먼저된 자가 되지 않기 원한다.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으니라‘!!(26절)
내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내가 수고를 더 많이 하든
부족한 수고이든..
언제나
가난한 마음으로..
늘 나중된 자의 심령으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기뻐할 수 있기
소망한다.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내가 너무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모든 선함을 이루어가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신실하게
주어진 삶과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오늘도 불가능한 구원을
가능하게 하시며
나중된 자를
먼저된 자로 세우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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