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예배자(민수기 1: 47-54)
- 오천호 목사

- Ma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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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를
파악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전체를
잘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군대와 같은 모습(조직)을
가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레위지파는..
그 전체 이스라엘 숫자를
계산하는 것에
포함시지키 말라고
말씀하신다(47-49절).
그 대신..
레위지파는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하거나
예배를 돕는 일을 하며(50-51절)
성막 주위에 머물게(살게) 하셨다(53절)
그렇게 성막 주위에
머물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에
함부로 가까이함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53절)..
성막을 섬기는 일
즉 예배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53절).
이스라엘의
모든 일들과 조직은
전쟁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성막 즉 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일을 위하여
레위인을 구별하여
택하신 것이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보혈안에서
이제 모든 사람들은
'은혜가운데'
제사장이 되고
레위인이 된다.
사실 구약의 레위인들도
하나님을 섬길만한
자격이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막에
가까이 할수 있을까?!!
레위인이든
다른 어떤 사람들도
자격은 없었다.
단지 하나님은
'은혜로' 레위인을 구별하여
성막을 섬기며
성막에서 예배할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 '예배자'의 일이
이제 모든 성도들에게
은혜로.. 주어졌다.
비록 신약 이후에도
주님의 일을 전임으로 섬기는
목회자들과 사역자들이 있지만..
이제는 그 은혜로
모든 성도들을
예배자로 부르시며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신다.
그리고
모든 성도의 삶의 현장가운데
'주님의 임재'라는
'성막'을 세우시며..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예배자가 되게 하시고
그 예배를 받기를 기뻐하신다.
나는 목회자 이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고
성도이다.
그래서 목회하는 상황에서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모든 순간속에서
나는 예배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내가 사는 목적은
인생의 전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로서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기뻐하기 위하여 산다.
나같은 자를
예배자로 부르시고
내가 걸어가는 모든 곳에
은혜와 임재의 성막이
임하게 하셔서
너무 감사하다.
나같은 자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주님은
내 삶의 모든 것을 통해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신다.
내가 주님을 기억하는 예배!!
주님을 사랑하는 예배!!
주님을 묵상하고 순종하려는 예배!!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예배!!
주님께 맡기며
주님과 동행하는 예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품는 예배!!
나를 조금 더 내려놓고
주님의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며 소망하는 예배!!
오늘 나의 하루가
오직 예배자로 사는 것을
기뻐하며..
예배자로서
희생하기도 하고
헌신하기도 하고
예배자로서
'주님의 임재와 은혜'를
누리고 또 나눌수 있는
그러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서 있는 곳에
오늘도
'주님의 은혜의 장막'을
세우시며
나를 '예배자'로 불러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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