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하나님의 작품(여호수아 2: 1-7)
- 오천호 목사

- Nov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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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기 위해 보낸
두 사람의 정탐군이
기생 '라합의 집'에
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1절).
그 때에 여리고 왕은
두 정탐군을 찾으려고
라합에게 사람을 보냈고(2-3절),
라합은
정탐군을 숨겨주었다(4-7절).
라합의 도움으로
정탐군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기생 라합이
가나안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의 길을
도운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큰 계획에
라합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할까?
물론
오늘 말씀 속에서
라합의 용기와 수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녀는 위험이 있었지만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도왔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정탐군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1절)
라합이 대단하거나 그녀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정탐군들이
라합의 집에 왔기 때문에
라합이
하나님의 계획에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생'이라는 의미가
요즘과는 다른 뜻을
가진다고 하더라고
라합은 그 당시에도 귀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합의 집에
정탐군이 찾아가게 되면서
하나님은 라합을
하나님의 큰 계획에
참여 시키셨다.
그리고
그 정도가 아니라
이방 사람 라합이
하나님의 나라에
한 사람이 되게 하셨고,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중요한 여인이 되게 하셨다.
기생 라합이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위대한 작품에
작은 한 조각이
되게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기생 라합이라는 존재가
완벽한? 작품에 오점처럼 보이고
자랑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
하나님은
기생 라합이
한 부분을 차지하게 하심으로
그 아름다운 작품을 이루어가셨다.
하나님의 작품은
멋지고
완벽하고
문제가 없는
인간의 삶과 사건을 통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약하고
자랑할 것이 없고
부족한 삶과 모습을
하나님의 작품의
한 부분에 그대로 두시면서
아름답고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신다.
성경은
인간의 수치와 약함을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나의 하루는
어떠할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기생 라합과 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추하고 흔들리고
온전하지 못하다.
아니
기생 라합이
보여 주었던
용기조차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삐그덕거리고
냄새나는
나의 하루와 삶을
주님은
부끄럽게 감추시지 않고 자신의 위대한 작품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시며,
나의 작은 순종과 용기를 통해
주님의 일과 뜻을
만들어 가신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소망할 수 있는 나의 삶이며
또한 정직하게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나의 목회와 수고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안에
깨어진 한 조각같은 나의 삶!!
하나님의 작품안에
부끄러움 그대로 남아 있는
나의 지난 시절과
오늘의 모습들..
깨어진 자를
부끄럽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주님의 길과 뜻에
사용하시며..
오히려 세상의 자랑할 수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나의 오늘가운데
비록 작은 것이지만,
주님의 나라와
그 뜻과 말씀을 품고
용기있게 걸어가는
라합과 같은
하루의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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